2025.11.23(일)
어제는 운동을 꽤 열심히 했다. 그것도 진짜 하기 싫어했던 상체를.
가슴과 팔이 약한 편이라 자세도 잘 안 나오고 중량도 욕심만큼 칠 수가 없어서 유산소나 하체에 비해 자주 외면했다.
요즘 느끼는 건, 회피를 한 번 할 때마다 회피한 횟수의 1.5배만큼 다시 시작하기가 두려워지는 것 같다. 다시 시작하는 게 두려워진다는 건 내가 내야 할 용기도 그만큼 더 필요해진다는 것.
용기를 내는 일은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더 어려워진다. 생각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쓸 데 없는 자존심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합리화가 노련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 수록 내가 편한 방식대로만 살고 있다. 해봤던 것,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들만 선택한다.
그렇게 잘 실패하지 않고, 조심스러우며 비슷한 생각의 틀 안에서 움직이는 어른이 된다.
그 시간들이 길어질수록 나는 삼십 대 어느 시절에 경험과 생각이 머무른 채 겉만 늙은, 속이 텅텅 빈 노인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한다.
흘러간 시간 만큼 속을 꽉꽉 채우고 싶다.
회피 보다는 용기로 하기 싫은 일을 해내어서 경험을 체득하고, 성장을 일구고 싶다. 그것이 꼭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괜찮다. 나를 위한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좋다.
7,8년 전 헬스장에서 처음으로 웨이트를 시도했을 때 프리 웨이트 존 앞에 선 내가 너무 어색하고 쑥스러웠다.
작은 키에 좁은 어깨, 누가 봐도 운동이라곤 해본 적 없는 초등학생 같은 몸의 내가 2키로 짜리 덤벨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왜 이렇게 꼴 보기가 싫은 건지.
아마도 그 때의 내 모습이 창피해서 회피했다면 난 여전히 웨이트를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지금은 더 이상 프리웨이트 존 앞에 서는 걸 두려워 하지 않는다. 5키로 짜리 덤벨을 들고 어깨, 등, 하체까지 숨도 안 쉬고 루틴을 돌리는 헬스장 고인물 아줌마가 됐을 뿐이다.
한 때는 상체에 비해 튼실한 하체가 밉고 싫어서, 하체 라인이 드러나는 바지를 일절 입지 못했다. 엉덩이가 도드라지거나 퉁퉁한 허벅지가 너무 창피했거든.
언제나 매끈한 다리를 갈망해왔고, 그것이 아름다움의 전부라고 생각했었는데 웨이트를 하면서 두껍고 튼튼한 다리도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드라진 엉덩이와 두꺼운 허벅지는 수치스럽고 민망한 게 아니라 탄탄하고 매력적인 거였다.
미의 기준이 확장되면서 용기 내어 예쁜 청바지들을 입어 보기 시작했다.
피팅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싫어서 항상 온라인에서 사이즈도 잘 모르는 옷을 샀다가 맞지 않아 버리기 일쑤였는데, 내 몸에 자신감을 갖고 나니 피팅룸에서 옷 입어 보는 게 그렇게 기대되고 좋을 수가 없었다.
단순히 운동을 해서가 아니라, 회피하는 것을 멈추고 안하던 걸 계속 시도하니까 아주 작은 용기로도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게 됐다.
이제 나는 특별한 용기가 없이도
평일과 주말 언제든지 원할 때 헬스장에 가서 2시간을 꽉 채워 운동 한다. 어깨와 가슴 같이 그 전에는 시도도 못했던 부위들까지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기쁜 마음으로 백화점으로 가서 자신 있게 옷을 입어 본다. ‘슬림핏’이라는 단어에 더 이상 쫄지 않는다.
수많은 피팅의 경험이 쌓이니, 어떤 바지가 내 체형에 맞는 지 눈 대중으로도 알아맞힌다. 퍼스널컬러 진단을 받아본 적 없지만 어떤 색감의 옷이 내 얼굴을 화사하게 만드는 지 이제는 안다.
불과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부 몰랐던 것들, 못했던 것들이다.
회피하는 것을 멈추고, 그저 꾸준히 시도했을 뿐인데 모습이 달라졌다. 내 자신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모습이라 그 모습이 썩 마음에 들었고, 변한 내 모습 덕분에 행동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탄탄한 몸과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링이 나의 부지런함과 노력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서 사람들과 만날 때 자신감이 생긴다.
회피하고 싶을 때마다
내가 회피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얻어낸 것들을 떠올리며 용기 내 마주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