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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기계 사이

2025.12.31(수)

한 해의 마지막에서 내가 이런 글을 쓸 줄 몰랐다. “인간과 기계 사이라”라니.

매일 아침 휴대폰 알람을 듣고 5시 15분쯤 수면에서 깨어난다. 그러고는 약 15분 정도를 더 가수면 상태에 있다가 30분에서 40분, 길면 50분까지도 누워서 폰을 만지작 거리며 의미 없는 시간을 허비하다가 요의를 해결해야 해서 겨우 일어난다.

이 모든 과정이 너무나도 효율적이지도, 자율적이지도 않다고 느껴져서 오늘 아침 다시 다짐했다.

나는 기계다. 입력하면 입력한 대로 움직이는 기계.

5시 15분에 일어나겠다고 했으면 그때 그냥 일어나는 거다. 눈을 떴음에도 ‘아 어제 운동해서 너무 피곤한데’, ‘일, 이십분 더 누워있는 건 별일도 아니지’ 하는 식으로 나를 자꾸 억지로 눕히지 말자.

그냥 머릿속에 입력한 대로 벌떡 일어나서 아침의 루틴을 실천하자.


어제도 분명히 의지를 다졌었다.

운동과 함께 체중 감량을 시작하겠노라고. 그래서 저녁도 안 먹고 붕어빵 3개와 귤 1개로 대충 이른 저녁을 먹고 운동을 갔는데 웬 걸? 유산소 40분 후에 근력을 하는데 몇 세트 하지도 않았는데 기력이 왕창 딸리는 거다.

세트 수를 줄이고 중량을 조절해가면서 겨우 운동량은 채웠는데, 집에 와서 의지가 와르르 무너졌다. (뭐 맨날 무너지는 와르르 맨션도 아니고..)

남편이 간장계란밥을 해 먹는다고 하길래 당연한 듯이 나도 수저를 들고 앉았다;

아니 분명 운동 가기 전에 “나 오늘은 저녁 안 먹을 거야.” 라며 선언했고. 남편이 “배 고플텐데?” 라고 떠봤을 때도 나는 “배가 좀 고파야 돼, 난.”이라고 냉정하게 말했는데.

순식간에 그 모든 마음이 사라지고 ‘아니, 일단은 식단 하지 말고 운동량만 늘리는 거로 하자;;’로 생각이 바뀌어 버렸다.

인간은 이래서 안된다고 느꼈다. (나 자신한테 화났지만 모든 인류 후려치기;)

역시 똑같이 생각했다.

나는 기계다. 기계. 입력한대로만 움직이자. 괜히 다른 프롬프트 써서 목표와 다르게 나를 움직이지 말자.


오늘 아침은 협찬 받은 제품의 정성리뷰를 썼다. 향수 제품이었는데 이 제품에 대한 정보와 감성을 담아서 써달라고 하니 너무나도 지피티 냄새가 나는 글을 써주는 거다.

그래서 말투와 일상적 언어를 섞어 달라고 했고, 거기에 나의 개인적인 의견들을 추가해서 써달라고 했다. 여전히 지피티 냄새가 나지만 약간 맞나? 아닌가? 싶은 정도의 후기를 완성해서 올렸다.

그 직후 나는 충격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앞서 작성한 리뷰들은 어떤 가 봤는데 이럴 수가. 향을 설명해 놓은 게 다 비슷한 거다. “첫 향은 시트러스 계열의 상큼함이 느껴진다” 거나, “시간이 지나면 그린 노트와 은은한 플로럴이 섞이며 한결 부드러워지고” 라던지, “베이스로 갈 수록 머스크와 우디 노트가 잔잔하게 남는다” 같은. 향수의 탑 노트부터 베이스 노트까지의 설명이 너무나도 비슷했던 것.

아마도 다들 다른 부분은 수정해도 향에 대한 지식은 잘 모르니 그대로 갖다 써서 그런 것 같은데 뭐랄까. 굉장히 기묘했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3~4명의 리뷰가 다 똑같은 ai의 대답에 의지해서 쓰다니.

리뷰는 말 그대로 제품을 직접 사용해본 사람이 만족도나 소비자로서의 느낀 제품의 장단점을 쓰는 건데, 그조차 직접 하지 못하고 ai에 의지하고 정답 같아 보이는 내용은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생각 없이 퍼트린다. (향에 대한 느낌은 매우 주관적인 건데도..)

그 리뷰가 과연 구매자들한테 도움이 될까?

비슷한 느낌으로 쿠팡이나 올리브영처럼 후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플랫폼에서도 다 ai가 쓴 것 같은 후기가 넘쳐 나서 어느 순간부터는 잘 믿지 않는다.

어쩌면 제품 후기만 독창적으로, 오리지날리티 있게 써도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ai 접근성이 낮아지고 사용량이 확대될수록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휴먼 콘텐츠가 돋보일 것 같거든. 실수도 많고, 오류도 많아서 다른 사람들이 평가하거나 비판하기 좋잖아. 어그로 끌기 좋다는 뜻이기도 하고, 어그로=관심이기 때문에.


행동은 기계처럼.

생각은 인간처럼.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생각이 많아지는 아침이다.

발버둥을 칠래도 제대로 쳐야 앞으로 나아가는데… 오늘 일기의 결론이 애매하다.

이제 좀 있으면 뭐가 인간이고 뭐가 인공지능이 한 건 지 모를 수도 있을 것 같긴 함.

☀️아침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