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만 하는 나이일 때는 몰랐다.
가만히 있어도 퇴화하는 것 같은 이 불안감을.
노화나 늙음이 언젠가 나에게 다가오겠지만, 그저 머나 먼 나중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음을 깨달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원래도 에너지 레벨이 낮은데 정말 요즘은 ‘뭐 했다고 이렇게 피곤하냐?’ 싶은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다.
퇴근 지하철의 압박을 견디며 겨우 집에 도착하면 운동 가지 말까… 하는 생각이 수 십 번도 더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정신력으로 매일 운동을 했다. 라고 하면 그건 인간 아니지. 로봇이지.
1월 뽕을 거하게 맞고 한 달 간 장요근에 무리가 올 때까지 열나게 운동을 하다가, 2월 들어서 거의 5일을 통으로 쉬어버렸다.

그렇게 열심히 하던 운동인데 고새 좀 쉬었다고 몸무게가 팍팍 줄더라. 이건 필시 체지방이 아닌 근육이 빠지는 속도감이라 마음이 다급해졌다.
3월 26일 건강검진을 잡아 놓고 역대급 인바디 점수를 받아보겠노라 마음을 먹었기에 주말이 되자마자 헬스장으로 달려가기로 했다.
간만이라 하체와 유산소, 코어를 집중적으로 조져야겠다고 마음을 먹고는. 정신 상태와 버금가는 몸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 최근에 지른 레깅스를 신고 갔다.
타이트한 옷 입고 운동하는 건 진짜 평생에 한번도 안 해봐서 좀 부끄러웠는데. 내 나이 올해로 삼십칠세. 주말 아침에 헬스장 오는 사람들은 나보다 한참 어리거나 한참 높은 할머니뻘들이라 그들 눈에 나는 아예 시야 안에도 안 들어오겠지 싶어서 그냥 용기 내서 입고 갔다.
집에서부터 계속 “바지 너무 창피한데 어쩌지” 소심한 징징이 같은 소리를 내내 하니 남편이 멋있는 거라고 치켜세워줬다. 운동하는 내내 내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사진도 찍어줬다. 죽고 싶었다. 창피해서.

계속 저렇게 사진을 찍어서 험악한 표정으로 협박하니까 그제야 물러났다. 썩 가버려.

아무튼 그렇게 남편이 생난리를 쳐대며 찍어준 사진 몇 장 중에 인상적인 게 있었는데. 서 있는 나의 뒷모습 사진이었다.
보자마자 아~씨~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 남편이 은근슬쩍 나보고 바지 무슨 사이즈로 샀냐 했을 때 눈치 깠어야 했는데.
당당하게 “나? S사이즈 샀는데 왜.” 하니, 뜬금없이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더니 결론은 “난 XXL로 사.” 였다. 그래서 뭐지? 싶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바지가 겁나 작아보였는데 돌려 돌려 말했구나 싶다.

썩을.
난 그래도 좀 빠진 줄 알았는데 적나라한 뒷모습 보니까 그게 아니네.
남편한테 사진을 받고 충격 받아 있는데 타이밍 기가 막히게 카톡 플친 광고 메세지 하나가 탁 뜬다. 뮬라웨어 마지막 할인이란다.
바이커쇼츠가 완전 세일해서 14900원인데 추가로 할인해서 13400원에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되었다.
M사이즈랑 L사이즈 쇼츠를 샀는데 일단 무지 저렴했고, 진짜 내 사이즈를 확인하기 위한 작은 투자?였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모두 남편이 찍은 한 장의 사진 때문이다. 이제 와서 보니 저 사진 저거 3만원짜리였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