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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서포트 하는 삶

부모보다 강력한 서포터가 생겼다


온라인에 딩크 부부로 산다고 하면 갖가지 악플들을 볼 수 있다. 애를 못 낳는 거면서 딩크라고 하는 거더라, 애 없는 부부는 결국 나이 들어 이혼하더라, 결혼을 했는데도 아이를 갖지 않다니, 이기적이다(?). 애도 안 낳을 건데 왜 결혼하냐? 같은.

하나하나 따지고 들며 반박할 수도 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고.

그저 2인 가족으로서의 삶이 더 잘 맞는 사람도 있다고 이해해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다. 나는 특별히 내가 딩크라서 3인 이상 가족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는 건 별로 없다. 내 또래 여성들이 3인, 4인 이상의 가정을 훌륭하게 이끌어 나가는 것을 매우 대단하다고 여기고, 그 선택을 그저 존중할 뿐이다.

그렇지만 어찌 된 일인지 온라인에만 접속하면 딩크 부부를 까대는 글들이 흔하게 보이기에 그냥 내가 느끼는 것 중 가장 좋은 부분을 좀 서술해보고자 한다.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롭다고 표현하는 부분은 너무 추상적이고. 이걸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했을 때, 나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배우자가 가장 강력한 서포터가 되어준다는 것.


  1. 나는 남편에게 게임기를 사주는 아내다.

결혼을 결심했을 때 신혼 가전으로 가장 먼저 구입한 게 플레이스테이션 4PRO 였다.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안 좋아지면서 갖고 있던 게임기를 테크노마트에 팔았던 일화를 말하던 남편에게 극심한 동정심을 느낀 게 원인이었다.

“그거 지금 얼마해? 내가 사줄게. 가자!”

그렇게 나는 이마트에서 50만원을 털렸다.

그리고 8년 후, 잠잠했던 남편이 다시 게임기 이야기를 꺼낸다. 이번에는 닌텐도. 나와 같이 할 수 있는 게 많을 거라며 나에게 이유를 갖다 붙였다.

그래서 사줬냐? 하면,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줬다. 그것도 몇 만원의 웃돈을 줘가면서.

어차피 니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니 돈인 부부지간에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해도, 취미에 몇 십 만원을 쓰는 건 분명히 눈치 보이는 일이기 때문에 70만원 상당의 게임기 선물은 나에게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이쯤에서 생각해본다. 나에게 길러내야 할 자식이 있었다면, 남편에게 70만원이 넘는 게임기를 통 크게 사줄 수 있었을까?

아니,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게임기를 갖고 싶어하는 남편을 타박 했을지도 모르겠다. 육아할 시간도 없는데 게임할 시간이 어디 있으며, 무려 70만 원이면 내 새끼 입에 들어가는 음식 퀄리티가 달라질 것인데 감히 그 돈을 게임기에? 어림도 없다.

그러나, 자식이 없는 43세의 이 남성은 자신의 2세를 기르는 대신 아내로부터 게임기를 선물 받았다.

잠깐. 저 게임기가 자식을 낳지 않은 대가임? 하는 생각은 말자. 너무 갔다. 그리고 딩크는 저 남자가 강력하게 원한 것이다. 나는 특별히 자식 생각이 없었다가 강성 딩크인 남편을 따르게 된 것이고.

하고자 하는 말은, 남편의 사치스러운(?) 요청에도 내가 큰 저항 없이 들어줄 수 있었던 건, 내가 맞벌이 부부이기에 가능했다는 점이다. 남편의 친구들은 나를 두고 너그러운 아내라고 표현해주지만 나 역시 자식이 있었다면 남편의 취미를 마냥 응원하거나 지원해주지 않았을 거란 말이다.

따라서, 서로의 취미를 서포트 해줄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맞벌이 부부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그게 꼭 취미 뿐일까? 상대가 무언가 꿈꾸고 있으면 그 꿈을 펼칠 수 있게 도와줄 수도 있다. 서로에겐 서로의 안녕만이 살 길이기 때문이다.


2. 작가의 꿈은 남편이 사준 키보드에서 태어났다.

내가 남편에게 기꺼이 게임기를 베풀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고작 ‘맞벌이 부부’ 인 점만은 아니다. 남편 역시 사력을 다해 나의 성공을 기원해줬기 때문이다.

애초에 큰 야망이 없는 남자로서, 차라리 아내의 대박을 기원하는 것에 가까운 처지였기에 남편은 매일 새벽 출근 전에 글을 쓰는 나를 가만히 보며 자신의 역할을 고민했었다.

말을 걸면 방해가 되니 멀찌감치 유령처럼 쳐다 만 보고 지나가기를 수차례였는데, 어느 날은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나에게 뭘 보여주는 것이다.

키보드 영상이었다.

나는 장비 욕심이 없는 편이라, 그냥 글자 입력만 되면 키보드구나. 하고 사용했는데 남편은 그게 아니란다. 나처럼 키보드로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키보드가 대단히 중요하다며 자꾸 나에게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보라 권유했다. 근데 내가 뭘 알아야지 고르지 이 사람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더니, 이것저것 키보드 소리도 들려주고 마트에 갈 때마다 키보드가 있는 쪽에 끌고 가서 “여보, 이거 쳐봐.”, “이거는 어때?” 계속 테스트를 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이런 느낌이 좋더라. 이런 소리가 좋은 거 같아. 해서 산 게 지금 쓰는 키보드다. 남편이 사줬다.

이전에 쓰던 거보다 훨씬 부드럽고 소리도 도독도도독. 하는 소리여서 안정감이 좋다. 무엇보다 키감이 좋으니 자꾸만 만지고 싶다.

이상한 일이다. 바뀐 건 키보드이지, 내가 아닌데 키보드를 교체한 후로 더 많은 글을 쓰게 됐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도 키보드를 바꾼 이후다. 몇 시간을 썼다 지웠다 해도 손목이, 손가락이 아프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이 나를 생각해서 고르고 골랐다는 사실이 자꾸만 나를 키보드 앞에서 떠나지 못하게 했다.

그건 분명히 부담이 아니라, 남편이 보여준 인정과 지지에 대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게 그 키보드다. 지금도 이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정리하자면, 꼭 맞벌이 부부여야지만 서로를 서포트 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책임지고 길러내야 할 아이가 없는 부부라면 다른 누구보다도 서로를 진심으로 서포트 해줄 수 있는 관계가 되기 싶다는 것이다.

배우자의 취미에, 꿈에, 기꺼이 돈을 쓸 수 있는 삶이 가능하다는 게 딩크 부부의 강력한 장점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그래도 정상적으로 사회 생활하는 성인 남녀가 결혼을 하면 아무래도 마음적으로, 경제적으로 너그러워지게 되고 그러면 뭘 거둬서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들긴 한다. 애 대신 고양이 키운다고 하면 어떤 사람은 또 욕하던데 욕 좀 하지 마라.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는 거지 뭘.

딩크로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