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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등반: 결혼은 싫은 것도 함께 하는 것

남편은 등산을 싫어한다. 모든 것이 갖춰진 실내에서 안전하게 하는 스포츠 외에 야외 흙바닥을 밟으면서 하는 모든 레저 활동에 대해 취미가 없다.

남자들이라면 으레 좋아한다는 캠핑도, 축구도, 야구도 다 취미가 없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5성급 호텔, 해머스트렝스 기구가 쫙 깔린 최신식 헬스장.

그와 달리 나는 계절과 날씨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야외 활동을 가끔 그리워 하는 편. (나 역시 매우 좋아하는 편은 아니긴 함) 특히 등산은 어릴 적에 아빠와 자주 다녔던 기억이 있어서 가을엔 꼭 의무적으로 산을 타고 싶어한다.

지난 가을엔 남편을 졸라서 한께 인왕산엘 다녀왔다. 결혼생활 7년 중에 이번이 3번째 하는 등산이다. 첫번째는 친정가족들과 함께 오른 가지산 등산, 두번째는 동네 뒷산이었던 천장산. 그리고 이번이 3번째다.

참고로 천장산에 올랐을 땐 뭣 때문이었는 지 기억도 안 나는데 그 산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작은 동산을 오르면서 대판 싸우는 바람에 등산이라고 하기도 뭐하다. (결혼 생활 중에 싸운 적이 손에 꼽는 데 그날이 손에 꼽히는 싸움이었다.)

어쨌든, 서론이 이렇게 긴 것은 남편과 등산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음을 이야기 하려던 것이었고 우리로서는 제법 큰 마음을 먹고 등산 길에 나선 것이다.

참고로 인왕산은 내가 직장 동료들과 퇴근 후 종종 오르던 산으로 난이도가 낮고 도심에 있어서 접근성도 좋았기에 남편을 꼬실 수 있었다.


인왕산 입구 찾는 길은 초행자라면 조금 어려울 수 있다. 경복궁역 3번출구에서 내려서 쭉쭉 올라가면 되는 데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초행이라면 최소 1번 이상 가본 사람과 동행하는 것이 좋겠다.

인왕산 초입의 성곽길. 이제 막 등산이 시작되려는 참이다. 이 전까지는 계단을 오르는 정도라 등산이라고 하기에 애매하다.

작은 봉우리 하나에 오르면 멀리 범바위가 보인다. 우리의 목적지는 저 범바위 꼭대기. 요 구간을 지날 때 봉우리 사이로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부는 지, 여름이면 순식간에 겨드랑이 땀이 다 마르고 겨울이면 얼굴이 꽁꽁 언다.

남편은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꽁시렁 대는 게 없다.

그리고 막상 인왕산에 와보니 주말에 시간 내서 등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보고, 생각보다 힘도 들지 않으니 기분이 좋았나 보다. 할아버지처럼 뒷짐 지고 여유롭게 도심 전망도 즐기면서 올라오고 있더라.

모자는 영포티 같이 써가지고.

정작 범바위 꼭대가리에서는 사진을 못찍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인증샷을 남기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틈에 낄 자신이 없었거든. 남편 성향이라면 그 인파를 헤치고 당당히 찍고 나왔을텐데 I 성향인 내가 그 인파를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내려와서 첫번째 봉우리 쯤에서 아쉬운 대로 셀카 몇 장 툭툭 찍었다. (셀카 너무 열심히 찍고 있으면 누가 찍어준다고 친절 베풀까봐 졸라 대충 찍었다..)

나를 위해 인왕산에 동행해준 남편에게 보상으로 맛있는 점심식사를 대접했다. 직장 근처의 닭한마리집. 가끔 점심 때 오는 곳인데 점심으로 먹기엔 가격이 비싸서 잘 안 오는 곳이다.

그런데 남편한테 쓰는 돈은 별로 안 아까우니까.

한번씩 이렇게 오래된 맛집을 오게 되면 괜히 그런 상상한다. 이 가게가 지금처럼 오래오래 가서 우리가 늙었을 때 ‘아 여기 예전엔 얼마였는데~ 어릴 때 우리 인왕산 올랐다가 왔었잖어~’ 하면서 추억을 나누는 모습.

남편과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많아질수록 관계가 더 끈끈해진다고 느낀다.

아이 없는 딩크 부부에게는 이보다 더 효과적이고 중요한 노력은 없다고 본다.

💍 딩크부부 결혼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