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온 가족이 내 집에 모였다

2+2+2가 되어서 만났다.


  1. 동생부부가 왔다.

호주에 사는 동생이 휴가를 맞아 한국에 방문했다. 일주일 간 도쿄 여행을 하고서 서울에 오는 거였다. 긴 휴가가 부럽기도 하고, 집 떠나 오래 여행하는 게 피곤하기도 할텐데 싶기도 하고. 30대 후반이 되면서 가장 달라진 점은 여행, 아무리 좋아도 5일 이상은 떠나기 싫어졌다는 것.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동생 부부는 많이 후덕해졌다. 행복한 가보다. 여행 다니는 동안 더 열심히 먹고 다닌 거 같다. 얼굴은 보기 좋았다. 제부랑은 늘 어색했는데 이번에 같이 지내면서 조금 친해진 듯.

집에서 닌텐도로 게임도 하고,

다같이 누워서 공포 영화도 보고,

같이 헬스장 가서 운동도 하고,

한식도 먹고,

영화 보고 쇼핑도 가고.

꼬이도 새로운 가족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2. 엄마, 아빠가 왔다.

동생네 부부가 오고 나서 3일 뒤, 엄마아빠도 우리집에 왔다. 왜 처음부터 같이 오지 않았냐 하면, 나와 남편이 출근하는 시점에 오셔서 낮에는 집이 덜 붐비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집에 사람 많은 걸 싫어하는 나를 엄마가 배려했다는 걸 나는 안다.

엄마는 오면서 반찬과 요리들을 바리바리 해왔다. 엄마 밥 좋아하는 딸 둘과 사위들을 위한 것일테지.

남편은 엄마에게 장모님, 편하게 쉬시라 – 했지만. 나는 그런 남편에게 “미안하지만, 엄마는 여기 쉬러 온 게 아닐걸. 우리 모두를 먹일려고 마음 단단히 먹고 봉사하러 온 거야.” 라고 말했다. 엄마는 내 말을 듣고 반박하지 않았다. 사실이니까.

나이가 드니, 엄마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내가 남편 생일 선물로 준 닌텐도. 가족이 방문하기 며칠 전부터 혼자 야금야금 이것저것 게임을 사 모으더니, 가족들이 방문하자 마자 그 쓸모가 제대로 통했다.

온 가족이 같이 닌텐도 스포츠를 즐겼다. 나는 엄마아빠가 발을 한번씩 구를 때마다 층간 소음이 걱정되어 “아빠 매트 위로 올라가서 해!” “엄마! 슬리퍼 신고 움직여!” 라고 애가 탔지만..

어느 날은 집 근처 삼겹살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나와 남편은 퇴근 후 뒤늦게 합석했다. 참 즐겁더라. 특별히 대화를 많이 한 건 아닌데, 그냥 이렇게 온 가족이 외식을 할 일이 잘 없다. 동생은 해외에 살고, 나 역시 고향에서 먼 도시에서 떨어져 나와 산 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각자가 만든 가정 안에서 가장 역할을 하는 딸들을 보며 부모님은 자기 자식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하고, 의지할 어른 같기도 하고. 묘할 것 같다. 나 역시 부모님을 그렇게 느낀다.

어릴 땐 그저 나의 엄마, 아빠로만 보였다. 독립한 지 꽤 지난 지금은 저 중년의 부부가 나의 엄마, 아빠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독립된 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엄마는 엄마가 아닌, 중년의 여성으로. 아빠는 아빠가 아닌 중년의 남성으로. 치열한 젊은 시절을 살아 내며 자식까지 키우고, 지금까지도 묵묵히 자신들을 필요로 하는 다 큰 어른들을 위해 호주로, 서울로 망설임 없이 올라오는.

멋진 어른, 가장 가까운 내 인생 선배.


3. 모두 함께 있었다.

동생네 부부가 호주로 돌아갔다.

엄마, 아빠는 새벽 출발하는 동생네 부부를 위해 새벽 3시에 기상해 인천공항까지 동생네를 태워다 주고 다시 서울의 내 집으로 왔다. 원래라면 인천공항에 갔다가 바로 고향 집으로 내려갈 생각이었다고.

내가 질색팔색을 했다. 피곤하다고. 그냥 하루만 더 있다 가라고.

그리하여, 나에겐 엄마아빠를 독차지 할 수 있는 하루의 시간이 더 생겼다.

금요일. 나는 오후 반차를 쓰고 엄마, 아빠를 집 밖으로 불러내 만화방에 갔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어린 시절 책나라. 엄마의 마티즈를 타고 읍내의 작은 책방에 가서 내가 보고픈 책을 고르고 있으면, 엄마는 어느새 1권부터 완결권까지 열 몇 권이나 되는 만화책을 한 가득 끌어 안고 있었다.

그렇게 만화를 좋아하던 엄마였다.

(아빠는 그냥 옆에서 낮잠 잤다. 아마 좋은 잠이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회와 술.

평생을 느끼는 거지만, 젊은 엄마아빠를 둔 게 정말 큰 행운이다. 아이를 낳을 거면 이것저것 재지 말고 빨리 낳아 기르는 것이 정말로 현명한 것 같다. 나는 물론 아예 낳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나에게 다음 생이 있다면 감히 말하건대 우리 부모님과 같은 삶을 살아보고 싶기도 하다. 20대가 무지하게 힘들 것 같긴 한데, 내가 지금과 같은 마음이 있다면 분명히 잘 키워내고 오십 대엔 장성한 자식들과 여행 다니고, 술 마셔도 끄떡 없는 멋쟁이 중년이 될 것 같다.

편집장 일기